[인터뷰] 서은교 여성행복누리 이사장
4층 건물에 생활실·교육실 등
8명의 엄마, 아이와 함께 사는
국내 최대 규모 미혼모시설
경제적 자립 위해 취·창업 지원
기존 복지제도 통합하는
‘원스톱’ 서비스 이뤄져야
12시. 회사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구내식당 한 쪽엔 어린 아기를 안고 온 엄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미혼모기본생활시설 ‘아우름’의 점심시간 풍경이다. 연면적 1177㎡, 지상 4층 규모의 아우름은 카페테리아, 교육실, 잔디광장, 생활실, 욕실, 컴퓨터실, 옥상정원 등을 갖췄다. 이곳에는 현재 8명의 엄마가 아기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온오프코리아 회사 직원들도 함께 건물을 사용한다.
개소 1년, 국내 최대 규모의 미혼모 시설이라는 타이틀답게 건물 내부도 널찍하고 깨끗했다. 입주기간은 최대 5년. 아우름을 거쳐간 엄마만 벌써 20~30명 정도다. 최근 기존 24세 미만에서 최근 30세 이하의 엄마로 입주 대상을 넓혔다. 임신을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사회, 가족과 단절된 채 홀로 출산을 감당해야 하는 미혼모들에게 치유와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서은교 여성행복누리 이사장은 미혼모 시설에 있어 최초로 ‘민간주도형 복지’를 시도한 인물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신용카드 결제대행 서비스회사인 ‘온오프코리아’는 가맹점만 4000곳이 넘는다. 2017년 1월 사재 40억원을 들여 아우름을 개소했다. 그는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불필요한 교육을 최대한 없애고 엄마들에게 정말 필요한 부분을 제공해주고 싶다”며 “이들의 꿈을 찾아주는 동시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끔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고 했다.
아우름 설립 이유가 궁금하다.
15년 전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의 권유로 작은 미혼모 시설에서 청소, 빨래, 우유병 소독 등을 하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어느 날 그곳에서 아기를 꼭 껴안고 누워 있는 어린 산모를 봤다. 걱정이 돼 시설의 원장님께 어린 산모가 아픈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원장님께서 ‘그 산모는 마음이 아픈 것’이라고 하시더라. 아기를 직접 키우고 싶었지만 집도, 돈도 없어 할 수 없이 입양을 보내기로 했는데 다음날이 입양 날이라 꼭 껴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면서 어린 산모의 흐느낌이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그 날 이후 어린 산모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일을 찾아보고자 다짐했고 그 기억이 지금의 나와 ‘아우름’을 만들게 됐다.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재 8명의 엄마가 살고 있고 2명의 엄마가 아우름을 이용하고 있다. 정원은 29명이다. 원장, 국장, 생활복지사, 간호사, 생활지도원, 조리사 6명 중 3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건강한 아기와 양육자의 안정을 위한 정서지원, 놀이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미혼모들의 경제적 자립,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Dr. 마리엔스’라는 뷰티·효소 힐링샵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 광진구에서 1호점을 운영 중이고 체인점을 늘릴 계획이다. 미혼모들도 일 해야 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창업과 자기계발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설에 오는 미혼모들의 고민은 주로 어떤 것인가.
출산과 양육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입주한 미혼모 대부분은 양육을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개 가족과의 단절, 경제적 어려움과 주거, 그리고 친부에 대한 양육비이행확보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교육과 창업지원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지원하고 있다. 주거 문제는 지자체와 연계해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친부에 대한 양육비이행 확보에 대한 고민은 우리 기관의 법률자문사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시설 입소를 결정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가족과의 단절 때문이다.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또는 부모들이 임신 사실을 알고 출산을 반대하는 경우, 부모들도 출산을 원하지만 마땅히 살 곳이 없는 경우 등 입주를 결정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응급분만을 했을 때 산후조리의 도움을 받고자 병원 측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시설마다 다르지만 사생활 보호 등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소를 꺼리는 미혼모들도 있다.
시설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느 정도 통제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아우름에서는 최대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주중, 주말 외출이 가능하고 원한다면 출산 전까지 일을 해도 된다. 아우름은 시설이 아니라 미혼모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꿈을 만들어 가는 ‘사랑방’ 같은 곳이 되고 싶다. 따라서 함께 생활하는 다른 미혼모들에게 방해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 지원하고 싶다.
운영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있다면.
사회복지사 선생님, 그리고 법인 직원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저와 함께 뜻을 모아주고 있다. 특히 가족과 단절돼 입주를 한 미혼 엄마가 출산 후 다시 가족의 품으로 아이와 함께 돌아가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렇다면 운영자로서 느끼는 현재의 고민은 무엇인가.
설립 초기만 해도 자신감을 가지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모든 것이 마음만 가지고 되진 않더라.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또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가 지금의 가장 큰 고민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당당한 워킹맘으로,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미혼모들의 ‘자립’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꿈을 가지고 키울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육아 도우미 서비스가 필수다. 미혼모들은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특별한 사회 활동 없이 출산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산 후 육아에 많은 시간을 뺏기기 때문에 자립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이들이 걱정 없이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양육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기계발, 학업 등을 계속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엄마가 되어 자신의 시간을 모두 빼앗기다 보면 자괴감,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가지면서 조금씩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미혼모 정책 개선 방안은.
정책은 잘 되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보단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정책을 한 곳에 집중해 미혼모들이 ‘원스톱’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출산 전후 양육, 주거지원에 대한 혜택 등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서비스 관계망이 통합돼야 한다. 자립을 위해 보육이나 생계 관련 기본 복지 기반이 탄탄하면 미혼모, 한부모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미혼모 스스로 당당해져야 하고, 이들이 사회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제도와 다양한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탈 시설화 흐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찬성한다. 이는 미혼모들을 위한 정책 제도가 충분해 시설이 필요 없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될까. 분명한 것은 현재 미혼모들의 패턴이 조금씩 바뀐다는 사실이다. 위기산모와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한 산모들이 늘고 있는데 시설도 이에 맞는 서비스 지원을 준비해야 한다.